※스토리와 스포가 있습니다!!!!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어요. 같은 영화를 봐도 가능하면 무대인사를 하러 오는 영화관을 찾아보는 취미입니다. 처음 간 무대인사 영화는 김향기 씨가 출연하는 ‘영주’였습니다.[신과 함께] 예전부터 좋아했던 배우라서 바로 예매해서 보고 왔어요. 사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그냥 평범한 독립영화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보고 오려고 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영주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서 영화 끝까지 다른 생각은커녕 뿌듯했습니다. 영화 이야기는 영주, 가해자, 영주 이모가 영화 속에서 가지고 있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영주.영주와 용인 영화의 주인공인 영주와 용인입니다. 그들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겨진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어쩌면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고인이 되어버린 부모님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런 평화는 오래가지 않고 사춘기의 영국인은 부모가 없다는 사실과 현재 실질적인 보호자인 고모와 삼촌의 행동에 분개하고 상반된 행동으로 언니인 영주를 괴롭힙니다. 용인의 상반된 행동 때문에 영주는 동생 때문에 합의금을 구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주는 결국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가해자의 두부 가게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대체적인 영화의 줄거리-<영주의 감정>연주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연주의 감정에 깊이 몰두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주의 감정은 가해자를 만나기 전과 후에 나뉩니다. 만나기 전에 영주는 그들을 원망하며 자신의 인생과 부모가 없다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 아직 부모의 주머니가 필요한 동생 때문에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가해자를 찾아 사용하려고 했어요.그러나 가해자를 만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영주 스스로 부모 품이 필요한 미숙한 어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를 만날 것을 알게 된 용인과 감정 싸움에서도 영주는 아직 자신이 미숙한 성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영주의 자아는 피해자의 자아와 가해자에 대한 연민의 자아가 내면에서 싸우는 감정 연기를 보이며 마치겠습니다.<김·햐은기의 영화 선택>연기력은 당연히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번[영주]의 선택은 김·햐은기 연기 인생에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어른도 어려운 복합 점 감정을 소화했다는 점이에요 이번 영화를 통해서 감정을 통제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다른 작품으로 보일 것입니다.또 하나의 이유는 성인이 된 직후의 영주가 강요되는 선택과 현실이 지금 연기자로서 길을 걷는 김·햐은기이 겪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이 되자마자 너무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합니다. 이는 영화 속의 영주와 실제로 활동하는 김·햐은기의 양쪽에 같은 무게로 다가올 거예요. 김·햐은기은 이 같은 무게를 영화 속에서 미리 느꼈다고 생각하고 이 같은 무게가 향후의 작품 선택과 연기 인생에 좋은 영향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영주의 고모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잘 받지 않습니다.(이미지만 아님 고모와 삼촌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현재의 보호자로 매우 나쁜 사람으로 나옵니다.첫 부분을 보면 보호자 아니라 뭔가 빌리러 온 사람처럼 행세합니다. 사춘기의 성인에는 폭행하고 장성한 듯한 연주에는 옳지 않고 자신들이 유리한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는 모습도 보이고 줍니다.나도 처음에는 고모와 삼촌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나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숙모와 삼촌도 처음부터 혼 난 것은 아니다라고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영주가 가해자를 찾기 위해서 법원 문서를 읽는 장면에서 영주의 부모가 7년 전에 죽었다는 글을 보고이모의 입장을 이해한 숙모도 역시 7년 동안 보호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피곤하네요. 아줌마라는 조건 없이 엄격히 하고 싶었다고는 생각 못했다. 다만 고모도 상황이 만들어 낸 인간이었습니다..가해자쌍문, 햐은슥 이런 상황에서 영주가 의지하는 사람은 가해자의 쌍문의 가족이었습니다 영주가 처음 찾은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햐은슥는 연수를 마치 딸처럼 소중히 하는, 잘해서 줍니다. 영주가 그래서 더그들을 찾아 마치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십니다. 쌍문은 대사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죄책감과 츤데레처럼 영주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줍니다. 혹시 영주에 이런 착하고 좋은 모습은 그녀를 더욱 혼란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들은 전신 마비가 된 아들까지 있었으므로, 영주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무조건 나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제가 복수해야 할 대상이 이렇게 착하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안 뒤 위에 말한 자아의 충돌이 나타납니다.<가해자의 감정>모든 관객이 원하던 모습은 가해자가 너무나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으로 나와서 이 모습을 본 영주가 화를 많이 내고 복수하는 이런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이것은 호랑일까?)그런데 영화는 가해자 역시 너무 약한 불쌍한 존재로 보였고 연민의 감정과 복수의 감정의 2가지를 복합적으로 느껴지는데요.두부 장수와 밀양의 박·도소프 같은 상황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보면 영화적 장치는 그들 스스로 그들을 내준 장치를 보이고 줍니다. 두부 가게를 경영하면서 속죄하다 분위기를 풍기고 햐은슥의 말을 듣고 보니 밀양의 박·도소프처럼 스스로 허용했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고 전신 마비가 된 아들이 자신들의 죄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고 있다고 그들 스스로 죄를 용서했느냐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속죄하는 대사조차 영화 속에서는 사악하게 그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너무 나약하고 불쌍한 캐릭터로 묘사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주가 누구 딸인지 알게 된 후부터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감정 선은 너무 단조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처음 영주를 봤을 때는 딸을 가진 듯했던 감정이 나중에 연주를 보면 자신들의 죄와 마주 하는 감정에 바뀌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결국 모두가 아프다영화는 행복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여운이 남았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만약 저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그리고 주변 상황 변화도 저를 도와주지 않고 매정하게 변해서 저를 팽개친다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인물이 악의 없이 속죄하고 있고, 어쩌면 나보다 더 불쌍하고 연민의 대상에 접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모두가 아픈 영화 [영주]였습니다.무대 인사정말 무거운 영화이지 쉬운 영화는 아니에요.심심하기도 하고요. 옆에 앉은 분은 질려서 죽을 뻔했는데 ㅋㅋㅋ그래도 김향기씨가 오면 눈치챘는지 무척 좋아하더라구요.처음 간 무대인사였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죽을 뻔했어요.처음 간 무대인사였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죽을 뻔했어요.처음 간 무대인사였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죽을 뻔했어요.처음 간 무대인사였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죽을 뻔했어요.